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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평론> 발간에 즈음하여



2020930일이 한러수교 30주년이다. 난산의 고통 끝에 한국과 러시아 두 나라 사이에 태어난 수교둥이가 어느덧 청년으로 장성했다. 역사적인 한소수교가 성사된 것은 천행이었다. 남쪽에서는 전통맹방인 미국이 싫어하고 북쪽에서는 북한이 결사반대했다. 1884년 조러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될 때와 마찬가지였다. “연미방하고 결일본하며 친중국해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 한다는 황준헌(조선책략)의 조언은 오늘날 루소포비아의 기원이 되었다. 그 당시 뒤늦게나마 러시아와 국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천행이었다. 그렇지만 그 행운들은 역사의 옷자락을 잠시 스치고 사라지고 말았다. 구한말에는 제정러시아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일제 강점기라는 동면에 들어갔고, 광복과 동시에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단과 동족상잔의 혹한을 경험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1990년 수교 후 1년도 안 되어 소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잔상은 이게 나라냐고 비통해할 만큼 가난하고 초라한 소련 말기의 혼란상이었다. 1990년대는 북한 주민들만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 신생러시아와 대한민국의 관계도 고난의 행군을 감내하는 역사적 숙명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한러관계는 절대적으로는 괄목상대할 만큼 성장했지만 상대적으로는 남한 아이 대비 북한 아이들의 신장만큼 발육상태가 낮았다. 지난 30년간 양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발전해 왔다. 정상회담이 총 33회 열렸고, 교역 규모가 19922억 달러에서 2019223억 달러로 증가했다. 2020년을 살아가는 러시아 국민들은 삼성 휴대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경동보일러로 데운 물로 샤워를 하고 LG 냉장고에서 케피르를 꺼내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차 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로 출근한다. 그런데도 한국인과 러시아인 사이에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 정서적 간극이 엄존한다.

 

어쩌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아직도 냉전의 관성에 따라 친미·친서방의 온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가 망하는 것은 기득권에 집착하는 아집 때문이다. ‘주변 4을 운운하면서도 서열 4위의 러시아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아니 네 번째 강국이라는 것조차도 앵무새처럼, 주술처럼 반복할 뿐이다. 그 기저에 루소포비아가 있고 그 이면에서 칼춤 추는 가짜뉴스가 있다. 정보홍수의 SNS 시대에서도 러시아뉴스는 교묘하게 비켜간다. 그래서 신뢰할 만한 정보가 부재하다. 대러 정보 전선에 나가있는 종군기자는 KBS와 연합뉴스 특파원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현장에서 어렵게 취재한 기사거리 조차도 국내 본사에서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그렇다고 자조 섞인 넋두리만 늘어놓으면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오늘날 방탄소년단(BTS)이 세계적·세기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등용문 격인 공식 매체에서 주목받지 못한다고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진실과 재능을 세상에 알리는 수단으로 SNS라는 조그마한 창을 활용했다. <유라시아평론>을 발간하는 배경도 바로 이것이다. <크라스키노포럼>에 소통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공식매체들이 외면한 유라시아 소식들과 러시아에 대한 올바른 정보들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2020.9.30. 편집위원장 박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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